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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파문 이상호 기자 석연치 않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24일 MBC 강성주 보도국장과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진행자인 신강균 차장과 이상호 기자가 방송 보도를 통해 고발한 SBS의 대주주인 건설업체 태영으로부터 시가 100만 원이 넘는 외제 명품 핸드백을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 준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고 합니다.
이미 관련된 방송 관계자들은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이고 해외 출장중인 이상호 기자도 조만간 귀국해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특히 이상호 기자가 직접 운영하는 고발뉴스( www.leesangho.com )에 자신의 심정이 담긴 글을 올려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가 올린 글에는 고발 전문기자로서 살아오면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겪은 어려움들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주요 일간지에서 중요 뉴스로 보도했으며 기사를 접한 독자와 네티즌들은 "고발 기자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다니"라며 질타를 가하는 쪽과 "받았던 것을 돌려주고 그에대해 회한의 글을 쓴 것을 트집잡다니 너무 심하다"는 쪽으로 나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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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무리 봐도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상호 기자는 글에서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에 또 나머지를 각종 이자로 떼이고 뼈다귀만 남은 월급봉투를 쥐어줬지만, 여태껏 불평 한마디 없던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MBC 10년차 기자가 받는 월급이 그렇게 적은가는 의문이 남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연봉 수준을 말씀 드리죠. 제 상식은 실제 받는 연봉과 1,2백만원 차이는 날 수 있어도 거의 정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입사후 수습 기간을 뗀 정식 기자가 됐을 때 받는 첫 연봉 수준이 SBS는 4000만원, KBS는 3500만원입니다. 그러나 KBS는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실제 기본급으로 계산하면 2000만원대로 낮은 편이며 기타 부가 연봉 등 지원금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줍니다. MBC는 3600만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사는 극과 극입니다. 조선일보가 3500~3700만원으로 최상위권이고, 제가 다니는 세계일보가 2000만 원대 중반,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수습을 떼면 1800~2000정도 됩니다.
입사 후 첫 연봉이 3600만원인 MBC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급상승합니다. 신문사는 위로 올라갈수록 연봉차가 낮아지지만 방송국은 급격히 높아집니다.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정보에 따르면 10년차 MBC 아나운서가 6~7000만원을 받습니다.
MBC는 게다가 한도가 제한되어 있는 법인카드를 별도로 나눠줍니다. 밥값은 해결되는 셈이지요. 조선일보도 휴대폰 통화료, 법인카드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향이나 한겨레요? 거긴 자기 연봉 깎아서 취재하고 밥 사먹습니다. 저도 취재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받습니다만 이 것 모두 2000만원 중반 연봉에 포함된 것입니다.
여러분, 초봉이 3600만원이상인 MBC 기자가, 10년차가 되면 6~7000만원에 이르는 MBC 기자가 보증을 잘못서고 차압이 들어와서(차압은 법적으로 월급의 절반만 떼죠) 월급의 1/3밖에 못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단한 금액 아닙니까? 떵떵거리면서 살 수는 없어도 그저 그렇게 살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넉넉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MBC 기자가 화장품 품팔이를 해야 하고, 길거리서 가판을 해야 하는 지경이라면 일반 국민들은 ‘죽어라’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이리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입니까?
게다가 저는 제가 쓰는 카메라와 MP3 녹음기등 취재 장비조차 수십만 원을 들여 직접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MBC는 적어도 그런 취재장비 지원이라도 넉넉하지 않습니까?
고발 전문기자로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온갖 외압과 유혹에 견뎌야 하는 것이 고발 전문기자입니다. 기자 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호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경제적인 마인드가 없어서 어렵게 살아온 고집불통 인생을 드러낸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유한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한곳에 고여 있는 자본주의가 썩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계하는 고발기자가 있기 때문인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이상호 기자는 감시의 눈초리를 넘어서 경제 논리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어머니께 15만원짜리 전기보온밥솥 하나 못 사드려 책상에서 울었습니다. 제 통장에는 빠듯하게 들어가는 적금과 생활비, 그리고 부산에 있는 동생 학비 5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취재비 30만원 포함된 200만원 남짓 되는 월급 쪼개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저 같은 기자는 차압 들어오면 당장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상호 기자는 SBS 대주주인 태영과의 만남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그런 술자리에는 애초에 끼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고 왔다면 당연히 박차고 나왔어야 합니다. 고발 뉴스를 만드는데 쓸 용기를 조금만 아껴 뒀다가 그럴 때 써먹지 그랬습니까.
서기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반문하시고 싶다구요? 아래 일화를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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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화 한 가지 말씀해 드리죠. 모 업체의 초청으로 중국에 IT관련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다들 취재도 하고 마지막 날은 관광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좋은 곳’을 간다고 하며 택시에 나눠 타고 모 술집으로 이동하더군요. 처음부터 낌새가 이상했지만 일단 하늘(?)같은 타사 선배들이 움직이는 대로 함께 했습니다.
제가 도착한 곳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초대형 단란주점이었습니다. 저는 ‘아차’ 잘못 왔구나 싶었습니다. 중국까지 와서 이런 곳에서 흥청망청 여자들 몸을 비비며 놀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구역질이 올라 왔습니다.(저는 참고로 한국에서 나이트클럽조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기자들 개인 돈이 아니라 역시 그 곳에는 초청 기업체의 홍보 직원이 ‘물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여자를 부르자 한사코 싫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자를 한명씩 지명해 옆자리에 앉혔습니다. 저는 상을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1년차 기자로서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예의상 노래만 한국 부르고 그 자리를 뛰쳐나왔습니다. 그 때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업체 사람들과 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업계사정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개인적으로 친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만원짜리, 수백만원짜리 초호화 술판을 벌여가며.. 그것도 중국에서까지 그런 식으로 했는가는 지금도 의문이 남습니다. 그래서 취재경력 1년도 안된 새파란 제가 그 선배들과 등질 각오를 하고 박차고 나왔던 겁니다. 다행히 그 기자들과는 별 탈 없이 그저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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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화를 말씀 드리죠. 첫 입사하고 1~2달 수습기자 시절 때 일입니다. A,B 선배 두 분이 저와 동료 C씨를 부르더니 오늘 밤에 중요한 취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등포에 있는 노숙자들 쉽터에 잠입해 현장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가 돼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길을 따라 나섰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방향이 이상합니다. 승용차가 이상한 쪽으로 가더군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영등포 뒷골목에 위치한 홍등가(사창가)였습니다.
한 선배가 성관계를 종용하며 절 밀어 넣으려 합니다. “야 임마 너 ‘아다’(숫총각)라며. 빨리 들어가” 웃으면서 싫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 순간 그런 선배가 너무 싫었습니다. 사실 기자라는 신분증 다 팽개치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공부나 계속 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 동료는 “한번 들어가 보자”라며 저를 잡아 당깁니다.
저는 한사코 ‘절대’ 안된다고 버텼고, 20여분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저 때문에 산통이 다 깨진 우리는 한강에 와서 베지밀 한 병씩 마시며 그날 밤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서명덕 너 고집 한번 대단하구나" 한 선배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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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런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화는 무용담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기자라면 당연이 가지고 있어야 할 고집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이상호 기자의 평소 취재 내용에 크게 감명을 받았던 저로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충격이 큽니다. 존경하던 선배의 또 다른 모습에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고민을 하는 이상호 기자의 고해성사는 당연히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석연치 않는 그의 글에서는 남들이 봤다는 ‘진실’이란 것이 제 눈에 안 보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너무 지나친 ‘청렴’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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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이상호 기자 명품 핸드백 수수고백글 전문
[#M_명품 핸드백 수수고백글 전문 더 보기 more.. | less.. | 제목 : 기자와 아내 /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
사회생활 만 10년째. 일에 묻혀 세월 모르고 살아왔다. 내가 사랑한 일이란 다름아닌 고발기자질.. 탐사전문 기자라고 치켜세워봤자 허망하긴 마찬가지다. 본질은 그저 '고발'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탐사기자도 본질적으로는 '고자질쟁이'에 불과한 것이다.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칭하며 무리지어 대접받기 원하는 자들 중에 상당수는 이미 고발의 소명을 잊은 사람이 많다. 기자됨의 소명을 잊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때로 그들이 나는 낯설다. 스스로 낮아지려 하지 않으면서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고자질하겠다는 것인지.. 기자란 무엇일까? 끊임 없이 던져본 질문이지만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돈과 권력 또는 정보를 지닌 자들,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과점하고 있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反공동체적 행태를 집어내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시민에게 알리는 일.. 이런저런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기자됨의 기본이다. 10년을 고발기자로 흐르다보니 이런저런 애환도 많았다.
남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이란게 그 자체가 내겐 멍에가 된다. 남에게 혹시 싫은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나를 노리는 사람에게 약점이나 잡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지만 때린 놈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얼굴이 알려질 수록 세상에서 나의 영역은 더욱 좁아진다. 나도 모를 그 누군가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고 있을 것이라는 강박이 괴롭다. 그래도 나야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렇다쳐도, 내 기자생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나의 아내일 것이다.
나의 아내와 내가 결혼한지는 올해로 9년째다. 제 갈길 잘 가고 있는 사람을 꼬드겨 내 삶의 길에 눌러 앉혀놓고, 나는 그동안 기자질에 들떠 밖으로 잘도 떠돌았다. 뒷모습 뿐인 남편의 존재.. 그런 나를 아내는 지금껏 참 잘 참아주었다.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에 또 나머지를 각종 이자로 떼이고 뼈다귀만 남은 월급봉투를 쥐어줬지만, 여태껏 불평 한마디 없던 사람이다. 혹시나 남편에게 해가 될까봐 남들 다 하는 부동산이나 증권에도 손한번 못 대본 바보다. 나는 그런 바보 아내에게 아직 변변한 선물 한번 해준 적이 없다. 옷 한 벌은 물론이고 스카프 하나 제대로 사줘보지 못했다.
이따금 '소품'이라도 하나 걸치라며 노동조합에서 받은 백화점 상품권을 건내준게 전부다. 그때면 얼굴가득 기쁜 미소를 내게 보내주는 나의 아내.. 그런 날마다 저녁 식사가 풍성해진다. 상품권이 몇시간 만에 후다닥 식탁 위의 찬거리로 잘게 부서져 올려진 것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며칠 전 기회가 왔다. 아내를 기쁘게 해줄 절호의 찬스였다. 회사 선배 A가 모처럼 저녁을 내겠다고 연락이 왔다. 약속장소는 서울시내 최고급 레스토랑. 그 장소에는 또 다른 회사선배 B도 미리 나와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들과 함께 있는 노신사는 얼마전까지 내가 고발해온 C사의 D사장이었던 것이다. 문득 A선배가 몇차례 내게 건냈던 말이 생각났다. C사 D사장이 나를 보자는데 함께 나가지 않겠냐는 얘기었다. 나는 그때마다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A선배는 그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D사장과 약속을 잡았고 그 장소로 나를 부른 것이었다. 선배의 처사를 이해해 보려했지만 웬지모를 처연함에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도록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나는 무모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벗어날 방법은 없어보였다. 연신 술을 들이켰다. 술 탓인지.. 어색하기만 했던 나의 미소는 점점 크고 자연스럽게 내 얼굴 전체로 번져갔다. '창녀'라는 단어가 자의식의 저편에서 꿈틀거렸다.
한잔두잔 술이 들어가니 어느새 경직된 나의 자세 만큼이나, 나의 경계심도 거북하게 느껴졌다. 발렌타인 21년의 맛이 아직도 혀 끝으로 전해온다. 그래.. 좋은 술은 확실히 부드럽다. 문득, '천박한' 고자질쟁이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틈입한다. '젊잖은' 언론인의 모습을 흉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40인데, 세상에 이해못할 일은 또 뭐가 있겠는가. 짐짓 목소리를 깔아본다. 낮고 침착하게 깔리는 나의 목소리.. 그럴듯하게 들려 적잖이 만족스럽다. 경계가 풀리자 비로소 방안을 둘러봤다. C사의 쇼핑백 3개가 나란히 방구석에 정렬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묘한 흥분감에 휩싸인다. 이 방에서 나가게 될 때쯤 저 쇼핑백중 하나가 내게 전달될 것이다. 과연 저 안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비릿한 욕정으로 내 몸을 탐닉하는 손, 그 손끝에 쥐어진 돈다발의 출렁거림. 금지된 것이 주는 은밀한 속삭임과 끈적거리는 유혹.. 술자리를 통해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되었다. 정말이지 술은 위대했다. 취하지 않겠다는 나의 자의식 너머로 쇼핑백이 출렁거린다. 그래.. 적당한 타협은 필요해. 사실, 난 너무 심하잖아? 그래 약간만 타협하자. 너무 전면적으로 싸우게 되면 삶이 너무 피폐해져. 지켜져야할 온갖 금조들이 너무 불편하다. 내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세상 모두와 모든 자본과 맞서 싸울 순 없잖아? 한 두개쯤 자본과는 친구해도 될거야.
맞아.. 업체와 술한잔 먹고 기념품 하나 받았다고 흔들릴 신념이면 아예 시작할 필요도 없어. 적당한 어울림 없이 어떻게 '그들'의 세상을 알 수 있겠어? 적당한 관계는 오히려 약이지.. 잔바리 기자도 아니고 낼 모레면 차장인데. 그래.. 내게 쇼핑백이 전달될 때까지 너무도 많은 상념이 나를 빠져나갔다. 아내들을 위한 선물이란다. 묵직한 가방을 손에 들고 나는 그 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미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아내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아내에게 쇼핑백을 전했다.
포장을 열자 그 안에는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구찌 핸드백이 들어있었다. 일순 아내의 얼굴에서 '불안감'과 '설레임'이 교차했다. 나는 아내의 '불안감'을 해소시켜보려 서둘러 이런저런 말을 펼쳐놓았다. 하지만 실패! 나는 특히 아내에게 거짓말을 잘 못한다. 생전 처음보는 명품. 구찌 핸드백을 사이에 두고 우리 부부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말 말고 그냥 쓰라고 아내쪽에 밀어넣고서, 나는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고발기자의 아내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연예계 '노예계약'을 고발해 촉발됐던 연제협 사건. 당시, 기자생활에 깊은 회의와 수렁에 빠진 나를 세워준 사람은 다름아닌 나의 아내였다. 당시 연제협은 소속 톱가수 백여명을 동원해 집회를 갖고 나의 처벌을 요구했었다. 기자생활을 접고 어디론가 떠나자는 나의 손을 잡아주던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당신 소신대로 싸우다 죽으라고. 아이는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이다.
현관 문을 닫고 세상 속으로 걸어나가며 흘렸던 엉터리 가장의 눈물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 한마디는 난리통의 나를 흔들림없이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몇차례 재산증식의 기회를 고스란히 놓쳐버린 나는 사실 빵점짜리 가장이다. 결혼 전 아내에겐 한강변 잠원동에 조그마한 아파트가 있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의 피해자인 아내는 당시 받은 보상금에 약간의 저축을 합쳐 제 살집을 마련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를 임신했을 무렵 우리는 첫번째 이사를 가게되었다. 아내는 극구 아파트 처분을 반대했다. 그런데 아내의 한마디가 문제였다.
조만간 이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있으니 팔아도 그때 팔자는 것이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재개발'이라.. 강남 복부인들이 할 만한 이야기를 지금 내 아내가 하고 있지 않는가. 아내는 이 말 안통하는 사내로부터 한참동안 '경제정의'에 관한 '훈시'를 들어야만 했다. 결국 그날 이후 우리는 전셋집 생활을 시작했고, 헐값에 매각한 우리의 신혼집은 이후 4년 만에 7배나 가격이 상승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면 지금도 가급적 잠원동 근처를 가지 않으려 애쓴다. 아내의 슬픈 표정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셋집 생활은 기자인 내겐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 주택정책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점에서 매우 고마운 일이었으나, '기자가 아닌' 아내에겐 견디기 힘든 불편과 좌절을 안겨주었다. 정확히 2년 마다 전세값은 절반 가까이 꾸준히 인상돼 주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강남에서 조금더 먼곳으로 밀려나는 엄혹한 사회현상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화장품 사건은 그러던중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날 아내의 옷장에서 우연히 화장품 세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화장품 세트는 한두개가 아니라 7-8개에 달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살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왠 사치란 말인가. 더구나 화장품을 사달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줄터인데 한 개도 아니고 이렇게 사재기를 해가면서까지 필요했냐 말이다. 아내에게 추궁하자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욱 더 화가나 큰 소리가 나왔다. 그제서야 아내는 무너지듯 말했다. 부업으로 화장품 장사를 해보려고 물건을 받아둔 것이라고.. 그리곤 집 밖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나는 그저 걷고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울컥 울고 싶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무능하다 싶어 화가나기도 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까지 생각났다. 쌀이 없어 감자인가 고구마로 상을 차린 아내.. 그 아내를 멋모르고 혼냈다가 당황해하던 수필 속의 그 남자.. 훗날 자라나 내가 그 어리석은 남자가 되리라곤 상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차라리 아내를 돕기로 했다. 부족한 것을 떳떳하게 여겨보자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단 한 세트의 화장품도 팔지 못했다. 세일즈가 아니라 기자질 하기를 너무도 잘했다고 위안했다. 아내의 성적도 좋지 않았다. 다른 부업거리를 찾기로 했다. 사내 아이를 둘씩 키우며 할 수 있는 부업은 없었다.
어느날 아내가 내게 포장마차 이야기를 꺼냈다. 쇼핑센터 부근에 오징어를 구워파는 간이 매대를 내면 짭짤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당시는 보증을 섰다가 생긴 빚에다가 그나마 적은 월급도 소송 때문에 절반이 가압류된 상태여서 몹시 견디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어차피 구겨진 스타일..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러자 모든게 차라리 떳떳하다는 생각이들었다.
나의 곤란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어떻게 남의 궁핍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기자에게 가난 만큼 좋은 스승이 어디있겠는가 생각도 되었다.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는 금언도 도움이 되었다. 한 선배의 배려로 포장마차 자리를 보러다녔다. 관념과 실제는 천양지차였다. 그저 건물 입구쯤에 예쁜 매대를 내면 아내도 별 어려움 없이 일을 할 수 있으리라던 나의 기대는 처절히 무너졌다. 바람부는 거리를 헤매다니면서,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수많은 포장마차를 새롭게 발견했다. 거리에서 오댕을 파는 아줌마나 떡볶이를 파는 할머니, 오징어를 구워파는 아저씨.. 그들에게서 모두 나의 아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선배는 그들 대부분 적지않은 자릿새 까지 내고 있다고 귀뜸해주었다. 지저분한 길거리를 벗어나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다. 자꾸만 길거리에 있을 나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장을 열고 심호흡을 크게 해봤지만 자꾸만 코가 맵게 느껴졌다. 목이 말라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탁자엔 악몽같은 구찌 핸드백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출근길 나는 아내에게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는 속없이 주섬주섬 핸드백을 꺼내본다. 천진난만한 나의 아내는 핸드백이 맘에 드는지 작은 행복감을 내비친다. 그저 잘 어울린다고 나는 말해주었다. 그리고 하루이틀 핸드백을 중심에 두고 우리집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일종의 집행유예 같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우리부부는 핸드백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않았다. 핸드백 이야기를 다 시꺼낸건 어제 아침이었다. 아내도 마음의 준비가 된 듯 내 말을 맞아주었다. 핸드백을 돌려주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며칠 만에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우체국에서 핸드백을 돌려 보내며 나는 작은 시험을 이겨낸 승리감을 맛볼 수 있었다.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제 2시간 후면 먼 나라 미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엔 더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시험과 나는 맞서게 될 것이다. 아내에게 핸드백 이야기를 미룰 수 없었던 것도 모두 이번 출장때문이다. 또한 밤 잠을 포기해가며 지금껏 구찌 핸드백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내려가고 있는 것도 모두 이번 출장의 성격 때문이다.
이번 출장은 자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반하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향후 기자의 숙명은 자본을 경계하는 일이다. 기자의 본분은 시장을 감시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기자가 자본으로부터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모두 자본과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라면 젖어서는 안될 일이다. 자본의 공세에 한번 젖게되면, 해일에 몰디브가 잠기듯 한순간에 끝난다.
자본에 젖은 기자는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기자상을 자임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시장을 넘어선 통찰과 감시를 수행하기 곤란하다는 얘기다. 오늘 떠나면 나는 내년 초에 돌아올 계획이다. 나의 출장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경우,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 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이번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분기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의 좌판 위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은 시위를 떠났다. 그저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가리라. <끝>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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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뭐 집안 사정 어쩌고 저쩌고는 제하더라도
분명 잘 못 했는데.. 왜이리 구구절절한지 모르겠습니다-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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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자님도 초심을 오래 오래 간직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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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동정심(?)도 가고 이건 아니다 생각도 드는군요...
10년동안 고발기자를 하면서 끊임없는 유혹과 회유등이 작용했는데 단 한번의 실수(?)로 나락에 빠지는건...
제가 보기엔 한번의 실수(음모일수도 있겠네요..)에 더 강인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일을 계기로 더 분발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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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벗어난 질문같지만 조선일보 기자의 연봉이 높은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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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오리// 음모론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준규 // 누구나 한번 실수는 하죠. 구찌 가방을 한번 받았다고 이상호기자를 비난하기에는 말이죠. 그러나 그 동안 그의 올곧은 행동들이 이해가 안된다는...
outsider // 초심이 흔들리거나 초심을 잊으면 전 기자 관둘 생각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습니다.^^
조스 // 네. 제 경험으로 비춰불 때 아마 그 이전에도 이같은 유혹과 협박이 매우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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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boxy//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신문을 팔아 흑자를 달성하고 있는 유일한 신문사입니다. 중앙과 동아도 매년 적자를 보고 있구요, 다른 신문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올해는 조선도 성과금을 지급안해 장부상 겨우 흑자를 맞출 만큼 어려웠지만 2003년의 경우 꽤 많은 흑자를 내고, 엄청난 성과급을 기자들에게 나눠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년자 기자가 일반인들 연봉에 비슷한 1~2천만원 성과금을 챙겨 갔다고 합니다. 조선의 각 부장급이나 임원진이 되면 거의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핫.. 조선일보는 수익이 나기 때문에 연봉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회사서 나오는 휴대폰 통화료 취재비 등 각종 지원금이 많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봉은 훨씬 더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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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에시 이해가 안가는건.두가지입니다.첫째 왜 그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는지가 의문이고..두번째로는 며칠뒤에 돌려줬다면 뭣하러 그 이야기를 개인홈페이지에 저리도 자세하게 썼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아닌말로 개인홈페이지에 안썼다면 이게 한겨레에 최초보도 되지도 않았을것이고 이런식으로 번지지도 않았을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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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지밀에 유독 의문이.. 왠 베지밀?
그나저나 법인카드가 나와서 밥값은 ㅤㄸㅒㅇ이라고요? 이야~~ 굉장하네요. M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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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토요일자 스포츠조선 보셨나요? 1면이 가관입니다.
사실은도 썩었다. 라고요.
이번 사건이 썩었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질이 않좋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적어도 조선은 그런말 할 자격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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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 // 저랑 같은 생각이시네요^^
젊은거장 // 지금와서 회상하는 겁니다만.. 그 선배들은 베지밀을 즐겨 드시더라구요. 왜인지 잘 모릅니다. ㅋㅋ 그리고 스포츠 신문은 원래 제목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제가 평가하기에는 뭐 하네요.. ^^ 제목 이야기 더 읽고 싶으시면 제가 쓴 '눈길끄는 제목 이렇게 만든다' http://itviewpoint.com/tt/index.php?pl=53&ct1=4 라는 글을 추천해 드립니다. 조선일보 제목장사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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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비판하고 평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지요. 이상호기자 문제가 많다는 쪽에서 선행을 많이 했다. 집안이 어렵다 내용이 나오면서부터는 많은 사람이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네요. 사람이 어떻든 문제는 사건이 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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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고발당한 업체들측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소송을 걸어놓고 있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가는 아쉽지만 거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뭐랄까 참 우습군요. 뭐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넌 왜 그렇게밖에 못했냐?라는 식의 글도 참 씁쓸합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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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 일반적으로 언론사 소송은 이상호기자에게만 직접 거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 회사측에서 함께 도와주기 때문에 자신에게 오는 피해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볼때는 소송 당했다고 하더라도 MBC 기자 월급은 매우 '넉넉'하다고 봅니다. 연봉 6~7000만원이 적은 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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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블로그 사건을 최근 언급한 몇 편의 블로그를
보니 모두 링크가 없더군요.
구글 검색 따라 들어왔다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RSS 포맷이 혹시 바로 되었는지 확인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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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 // 제 RSS는 정상 동작 하고 있을 겁니다. itviewpoint.com/tt/index.xml 로 등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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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타도 들어와서 잘 보고 갑니다..
총각하고 아들 둘 키우는 가장하고는 틀리겠지요
좋은 글많이 쓰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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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 힘내세요! (( 여기, 대나무를 좋아하실 것 같은 분이 또 계시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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