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jpg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 http://en.wikipedia.org/wiki/Doris_Lessing , 사진 왼쪽 )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그녀는 지난 해 말 수상 기념 인터뷰에서 ‘인터넷의 어리석음(아둔함)’에 대해 우려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매체들이 인터넷의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Nobel Laureate Says The Internet Makes Us Dumb, We Say: Meh
http://www.techcrunch.com/2007/12/09/nobel-laureate-says-the-internet-makes-us-dumb-we-say-meh/

Nobel prize winner Lessing warns against 'inane' internet
http://www.guardian.co.uk/uk/2007/dec/08/nobelprize.books

In Nobel Speech, Doris Lessing Blames the Internet for a Decline in Book Reading
http://chronicle.com/wiredcampus/article/2603/in-nobel-speech-doris-lessing-blames-the-internet-for-a-decline-in-book-reading

Doris Lessing warns of 'inanities' of internet
http://www.telegraph.co.uk/news/uknews/1571907/Doris-Lessing-warns-of-'inanities'-of-internet.html

저는 인생을 수십년 먼저 살아오신 지식인으로서, 정확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녀는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용어 정의에 다소 차이가 있지 않으셨나 싶네요. 아마도 그녀는 internet이 아니라 web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작금의 web은 제가 봐도 혼돈이고 뒤죽박죽입니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다고 봅니다. 특히 인터넷은 역기능이 쉽게 부각될 수 있는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이 저 같이 머저리같은 사람의 몫이겠지요.

니콜라스 카 등 최근 지식인들도 "구글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Nicholas Carr - “Is Google making us stupid?”
http://www.theatlantic.com/doc/200807/google
http://news.cnet.com/8301-13505_3-9962935-16.html

그런데 구글이 지난 수요일 홍보 대행사를 통해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반박 칼럼을 번역해 보내 왔습니다. 보도자료인 즉, “지난 주 더 타임즈(The Times)에 인터넷과 인간의 사고 능력에 관한 흥미로운 칼럼이 게재되어 참고용으로 전달한다”라는 설명입니다.

최근 들어 일부에서 ‘인터넷이 인간을 어리석게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더 타임즈의 스타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아로노비치(사진 오른쪽)는 인터넷이 오히려 인간의 사고의 깊이와 폭을 넓히고, 다른 사람들과 지식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배경에는, 인터넷 논란의 중심에서 구글(Google)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인터넷의 아버지인 빈튼 서프 부사장 ( http://itviewpoint.com/41366 )이 구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참고자료 배포는 의미가 있는 행위일 겁니다. 검색이 인터넷 문화가 돼야 하는 구글로서는, 세계 정보의 효율적인 수집을 목표로 하는 구글로서는 회사의 존립과 직결된 이슈입니다. 

데이비드 아로노비치는 글에서 “인터넷 시대의 십대들이 자신이 어렸을 때보다 더 훨씬 더 많은 지식들을 접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고 있다. 십대들의 경우, 페이스북 연락처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며,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소녀들은 직간접적인 타인과의 만남과 접촉들을 통해 실제적인 인간관계가 보완되며,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아이들의 사회적인 삶을 풍요롭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로노비치의 주장에 대해 70% 정도 공감합니다. 다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과정에서 ‘지적’이 아니라 ‘호기심’에 초점이 맞춰지는 요즘 웹의 세태에 대해서는 통렬하게 성찰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말한 것과 달리 현실을 무조건 낙관적으로 봐선 안 되는 것이죠.

전화번호 한줄 외우는 것도 어려워하는 디지털 치매 현상을 보세요. 초딩 숙제부터 성인 정보까지 모든 걸 네이버에 의존하는 무서운 현실을 보세요. 'Turn OFF'가 되면 현대인들의 사고가 멎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인터넷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없애진 않겠지만 다소나마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터넷의 부흥에 앞장서기에 앞서 매우 경계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소비형 지식만 늘어날 뿐...

아래는 구글 코리아가 제공한 번역자료 전문입니다. 링크를 따라 가시면 영문 원본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인터넷이 뇌기능을 축소한다고? 천만의 말씀!
The internet shrinks your brain? What rubbish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사고(思考) 능력을 없앤다는 비관론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We should ignore the Jeremiahs who think the digital age is killing our ability to think

- http://www.timesonline.co.uk/tol/comment/columnists/david_aaronovitch/article4517674.ece
- http://www.wired.com/culture/culturereviews/magazine/16-09/st_essay

매체: 더 타임즈 (The Times) [2008년 8월13일]
작성자: 데이비드 아로노비치 (David Aaronovitch, 타임즈 칼럼니스트)
- http://en.wikipedia.org/wiki/David_Aaronovitch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면 적어도 숭고한 선언 하나정도는 해야 하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노벨상은 탈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은 지난 겨울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인터넷이 “전 세대를 어리석음으로 유혹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인터넷 세계에 대해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레싱은 “웹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확신을 가졌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파편화된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수년 동안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일상화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혹자는 레싱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길래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 자못 궁금하다. 짐작컨대, 80대 후반의 나이에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그녀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아마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최근 몇 주 동안 레싱에 동조하는 주장들이 동시대의 문예지에서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애틀랜틱 먼슬리 최신호에서 “구글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가?”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레싱과 같은 입장에 있음을 확인했다. 바로 이어 브라이언 애플야드(Bryan Appleyard)가 펜을 들어 장문의 글을 날렸다. 그의 글은 레싱의 한 소절을 흉내 낸 제목으로 “어리석도다…왜 구글 세대들은 구글 만큼 명석하질 않는가”로 시작된다.

카는 그의 글에서 자신이 “한 때 단어의 바다를 누비는 스쿠버 다이버였는데 이제는 제트 스키를 탄 사람처럼 바다 표면에서만 빠르게 움직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주범이 인터넷이며 이와 함께 검색 엔진, 유튜브, 블로그, 페이스 북은 “인간이 집중하고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인간의 정신적 습관을 인터넷이 바꾸었다고 비난한 다른 작가를 인용해 “더 이상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톨스토이의 명작을 다시 읽어보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책의 절반을 읽고 나서야 인터넷에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확실치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요약하자면 카의 견해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독서가 있다는 것인데, 하나는 보통 책을 통한 독서인 심독(深讀)을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피상적인 정보를 얻는 웹 독서이다. 전자를 통해 우리는 “풍족한 정신적 접속”을 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는 적절하게 관여하지만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카는 “정신적 방해를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서를 하면 마음속에 조용한 공간이 열리는 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상적인 세계를 불러내거나 혹은 “다른 어떤 사고행위를 통해 스스로 연상을 만들고, 단정을 내리고 유추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기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즉각적으로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사고의 깊이가 없이 옆으로만 넓게 퍼지는 “팬케이크형 인간”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애플야드가 디지털 문명을 비난하는 것은 그의 본질적인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는 웨이크필드로 가는 기차에서 3세대 신형 아이폰(iPhone)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가 방해를 받은 상황이었다”. 전화, 문자, 이메일이 잔뜩 들어왔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아이폰으로 접속한 웹사이트를 통해 받은 400여 개의 뉴스정보 속으로 풍덩 빠지는 편이 차리리 나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이폰으로 하루에 기껏해야 7~8개 정보 – 스카이 뉴스, 축구팀 토튼햄 핫스퍼, 런던 날씨 – 를 받고 있다. 기차 안에서 400건의 정보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과도해 보인다.

애플야드는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며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다…나도 여러분도 모두를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애플야드가 뉴스를 더 적게 받도록 설정을 바꾼다면 그의 죽는 속도가 느려질 지도 모르겠다.

그는 “집중력은 인간 의식의 미스테리를 푸는 황금의 열쇠인데 집중력의 반의어인 산만은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럼 그의 논리대로 인간이 산만해지지 않는 능력을 갖춘다면 바보도 현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일까?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데 “인터넷은 그런 효과가 천 배나 높다…지금 10대들은 학교에서 귀가하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마이스페이스에서 채팅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누더기” 같은 의미 없는 커넥션을 만들고 있다. 이는 “실 세계에서의 상호 영향을 통한 복잡성과 깊이”가 없는 것으로 충성심도 감정도 부족한 짓이라는 주장이다.

애플야드는 지금 우리는 인터넷으로 삶이 수월해졌지만 “미발달 상태의 사이버족”으로 남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이 “모든 정신적 방해물에 대해 저항하고, 평화, 고요, 명상을 요구해야 하는 그런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수도승이 되어야 한다. 아침 예배를 드리고 현업에 나가고, 간단히 음식을 섭취하고 저녁기도와 명상을 하고, 자신의 일상, 저녁, 기도, 취침에 대한 것으로 기록을 꾸미는 일을 반복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진보의 세계에 의해 소외된 “자연스런” 자아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고통은 나의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스스로의 탈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더 좋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라면 기둥 위에서 살았다는 시리아의 고행자 시미언의 이상 세계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인간이 존재했었으니 말이다.

일단, 개인적 경험의 수준에서 시작해보자. 필자는 매일같이 그리고 연속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장편 소설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다. 팔자는 본인이 알기로 35년 전 ‘전쟁과 평화’를 읽었던 몇 사람중의 한 사람이며 지금도 그렇다. 인터넷은 필자를 책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는커녕, 과거에 찾기 힘들었던 도서들을 쉽게 찾고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레싱과 애플야드의 혹평에서는 필자의 딸들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지도 않다. 필자의 딸들은 레싱이 십대였을 때 그녀가 알았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십대들의 페이스북 연락처는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소녀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알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 연락책을 통해 자신들의 실제 세계의 관계가 보완되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초등학교 시절 급우와 같은 친구들은 쉽사리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필자의 아이들의 사회적인 삶을 풍요롭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서 가급적 많은 책을 찾아내기 위한 구글의 프로젝트는 그 어떤 학습보다도 보다 생산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보는 능력만 있다면 굳이 학식이 높은 성직자가 될 필요도 없다. 제목 없는 도서관 카드 때문에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다. 올바른 순서로 세 단어만 입력해보면 된다. 그리고 알라딘이 한 것처럼 ‘열려라 참깨’라는 명령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예언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운이 생긴다. 아마도 그것은 레싱이 지적한 “확실한 것”을 위협하는 통제 불가능한, 스스로 지속되는 지식의 확산일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3인의 비관론자가 인터넷에 대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점은 참여의 정도(quality)이다. 쌍방향의 참여가 가능하기에 인터넷 시대가 텔레비전 시대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미국 작가 클레이 셔키(Clay Shirky)의 말처럼 뉴미디어는 3종 경기와도 같다. “사람들은 소비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생산과 공유를 원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행동이 지하방에 갇혀 길리건의 섬(Gilligan's Island) 재방송을 보는 것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라 믿고 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비관론자들처럼 한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검색하는 법, 차별화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예컨데, 검색엔진 기술의 졸업자격시험(GCSE)을 통과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끝>

이 글과 가장 관련이 있는 글을 자동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블로거 '떡이떡이' 입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 사랑해요~ 인터넷 생활을 더 즐겁게!

블로깅 직접하기(오픈블로그)는 http://itviewpoint.com/board/51280 를 참고하세요. (자신이 직접 쓰신 좋은 글이나 널리 알리고 싶은 정보나 소식을 쓰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