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는 에어콘이 없는데(사실 우리 집은 평생 에어콘을 사 본 적이 없습니다. 전기세가 많이 나와서... ㅋㅋ), 요즘 처럼 더울 때는 정신이 혼미해 질 지경입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현관 신발장에 바짝 붙어서 거의 노숙하다 시피 하며 잠을 자겠습니까. ㅋㅋㅋ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처럼 집에서 노는 날에는 더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 9일이죠. 어머님과 함께 수락산에 갔습니다. 시원하게 있을 만한 곳을 찾아서 간 것이죠. 서울 근처에는 도봉산이나 북한산 등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수락산은 계곡이 그나마 유명해 발을 담그면 시원하다는 귀동냥을 챙긴 뒤 무작정 나섰습니다. 수락산역에 내리면 된다는 정보만 알고 있는 채...

나름대로 오전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수락산역 입구부터 벌써 왁자지껄 합니다. 수락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부터는 아침부터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소리에 시장판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수락산 참 좋더군요. 친한 사람들과 함께 와야겠습니다.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거 거의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저도 숨이 찼고, 어머니도 연세가 있으신지라 힘들어 하시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오르고 나니 “정상 바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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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내려오며 계곡에 발 좀 담근 뒤, 김밥-사과-과자 등을 먹었습니다. 약숫물을 떠서 내려오는 중, 산 중턱 꽤 널찍한 광장에서 구성진 트로트 노랫말이 들려 왔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래를 경청하기도 합니다. 한 분은 노래 가락에 맞춰 코믹스러운 춤도 추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박수로 장단을 맞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 특히 노래를 잘 부르시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허연 수염에 모자를 쓰고, 젋은 스타일응 셔츠에 힙합 바지. 나이와 맞지 않은 외모 덕에 더 관심을 끄는 것 같습니다. 이 분은 모인 곳에서 노래자랑을 주도하시면서 사회를 보시더군요. 반주는 당연히 없고, 노래책 한권에 의존합니다. 마이크가 있긴 한데 알고 봤더니 그냥 폼 나라고 마련하신 것 같네요.

나중에서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수락산의 명물이라고 하더군요. '수락산 털보 가수'라고 하면 다들 안다고 합니다. TV 출연도 하신 적이 있다고 하네요. 처음 보면 ‘김도향씨’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ㅋㅋㅋ

수락산 노래자랑 / 털보가수 관련 블로거 포스팅
(다들 단순한 노래판인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

- http://blog.joins.com/dutldi/7053549
- http://blog.daum.net/46papa/4663369
- http://blog.daum.net/echim88/13166096
- http://blog.naver.com/ysbae0513/70031395676
- http://blog.paran.com/kangjinee/7269776
- http://blog.naver.com/hwhwang21/20001486930
- http://blog.naver.com/me2u2_love/50019782915
- http://blog.naver.com/jisan80/130014355377
- http://blog.dreamwiz.com/asamade/6205395

토일 주말 오후 1시 경부터 시작해 쉴새없이 노래를 부르신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털보 가수 아저씨가 한두 곡 부른 뒤, 초대가수라는 분들이 돌아가며 나서는데, 이 분들은 아마 오다 가다 만나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는 노래 클럽 멤버인 것 같았습니다. 노래가 좋아 자발적으로 노래를 부르겠다고 선뜻 나서시더군요. 서로 익숙한 의사소통 모습을 보니 공개적인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받는 것 자체가 즐거우신 것 같았습니다.


Video: A Singer of Surak Mountain in Korea

<강추 영상임. 정말 꼭 보시길 권해 드림>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털보가수 아저씨는 생판 이방인인 주변 관객들에게 노래를 한곡 하라고 권유합니다. 물론 강제는 아니죠. 나중에 산을 내려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님이 노래가 하도 구성지고 재미가 있어서 당신 본인도 한곡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저의 어머님은 노래를 참 잘하십니다. 저도 어머니 목을 물려받아 노래를 잘 하는 편이구요. 어머님은 젊었을 때(60~70년대) 읍내 노래자랑에서 1등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부상으로 ‘솥’ 등을 따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마 집안 형편이 넉넉했으면 분명히 가수가 되셨을지도.

저는 이 모습을 보며 ‘한국형 블로고스피어’의 모습이 이렇게 투영되는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1) 노래를 일방적으로 소비만 등산객들이 거의 대부분(98% 이상)다. 노래 자랑이나 행사 자체에 대한 이해가 있다기 보다는 등하산을 하면서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들일 뿐.

-> 블로그도 스크랩이 대부분일 뿐, 생산자는 매우 적다.

(2) 누구나 노래자랑에 참여할 수 있긴 하겠지만, 일단 판을 크게 벌리는 사람들은 스타성이 풍부한 ‘털보가수’ 아저씨 뿐이다.

-> 블로고스피어도 스타성이 있는 몇몇이 큰 흐름을 이끌어내는 구조다. 입소문 구조의 전형적인 특성.

(3) 익명의 아마추어 노래 애호가가 어디서 어떻게 자발적으로 참여할 지 예상하기 힘들다.

-> 블로그도 참여의 정도를 예측하기 매우 힘든 경우가 많음.

(4) 하지만 그렇게 여러 차례 행사를 거치면서 ‘수락산 노래자랑’으로 자리 잡았다.

-> 블로고스피어도 굴곡을 거치면서 범침할 수 없는 ‘집단 지성’이 형성된다. 네이버 블로그가 쌓인 db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 쩝... 확실히 '수락산'으로 검색하면 구글(네이버 밖의 블로그)보다 네이버 결과물이 더 다양하다. 허헛 쩝.

(5) 이날 행사는 분명히 ‘집단지성형 노래자랑’ 이다. 누구나 참여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적극적인 참여자의 비율은 극히 적다는 것. 문제는 어떻게 저의 어머님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다. 이런 점에서 털보가수 아저씨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를’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는 털보가수 아저씨의 행동 패턴을 봐야 한다. 털보가수 아저씨는 일단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특별한 ‘퍼포먼스’가 확보되어 있고, 일방적으로 개인 시간으로 희생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행사를 무한정 ‘즐기면서’ 매주 정기적으로 꾸준히 해 나간다. 이를 통해 충성도 높은 참여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다.

->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을 블로고스피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블로그 활성화의 관건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난 어렴풋이 알 수 있을것 같은데...


수락산에 가면 털보가수 아저씨를 찾으세요. 관악산 다람쥐는 잊어 버리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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