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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되 버린 분들이 있습니다. 1998년 12월 사망한 최명희 소설가(사진 왼쪽)와 1988년 10월 사망한 박정만 시인(사진 오른쪽)입니다.

오늘 점심때 제가 존경하는 모 분이 화창한 날씨를 보고 “형, 저 봄볕이 우리들 먹으라고 하늘에서 뿌리는 청산가리요, 청산가리”라는 대목을 소개시켜 주셨는데,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요즘 이명박 정부의 삽질을 보며 답답한 상황에 비유할 수 있는 것 같아 발췌 소개합니다.

오늘 날씨는 지독하게 좋았는데... 누구는 땅을 사랑하고, 30억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경력증명서 위조에 국가를 통제하려는 삼성 놈들까지... 봄볕은 국민에게 내리는 청산가리입니다.

[시인 세계] 2003 여름 통권 제4호 특집 / 기획특집 시인의 요절과 마지막 시 / 김 영 석(시인) 씀

광주사태를 겪고 난 5공초 암울하던 때, 박정만은 청진동 근방의 모 출판사 편집장 일을 맡고 있었다. 봄볕이 더없이 화사한 어느날 오후. 나는 최명희(아, 그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와 그 출판사 부근의 조용한 술집에서 정만이를 불러냈다.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그랬듯이, 글러먹은 세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몹시 침울하고 다소간 체념적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곧잘 그렇듯이 이야기는 회고조로 변했고 취기가 오르면서는 다시 글러먹은 문학과 글러먹지 않은 문학으로 화제를 바꾸어 목청을 돋우기 시작했다. 희미한 기억들을 모아보면, 박정만은 요약컨대 시는 무엇보다 우리들의 연면한 정서를 표현해야 하며, 그 표현은 마땅히 우리말의 가락과 뜻이 미묘하게 결합된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우리말에 대한 시적 감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글러먹은 시에 대해 개탄했던 것 같다. 이에 최명희도 동의하면서, 우리의 것을 우리 세대에 복원하고 세련시키지 않으면 우리 문학은 큰 줄기를 하나 잃어버릴 것이 틀림없다며 대략 전통주의적 입장을 이야기했고, 나는 이들의 말을 다소 예스럽게 표현하여 조선주의 또는 조선혼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동의했던 것 같다.

한참 이야기가 도도할 무렵 열려진 뒷문을 내다보니 보자기만한 뜨락에 새로 돋은 여린 풀잎들 위로 화사한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이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나는 그런 봄볕의 정경을 보면 슬프다 못해 그만 처참해지고 만다. “처참하구나, 처참해.” 무심코 뱉은 내 말에 정만이 눈치를 챘는지, “형, 저 봄볕이 우리들 먹으라고 하늘에서 뿌리는 청산가리요, 청산가리. 저 청산가리 소주에 타서 마시고 우리도 그만 청산가리나 됩시다.” 하고 말을 받았다. 이어 우리는 “자, 청산가리 한 잔.” “청산가리 곱빼기로 또 한 잔.” 하고 외치면서 거푸 잔을 들었고, 정만이는 드디어 물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며 갑자기 일어나더니 그의 18번을 달뜬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봄날에는 꽃 안개 아름다운 꿈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 그런데 낌새가 이상하여 옆을 보니 술은 입술에 대는 둥 마는 둥하던 최명희가 흰 무명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누이처럼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하니 정만이는 제 식으로 잘 직조된 조선말의 영롱한 시들을 썼고, 최명희도 또한 제 식으로 조선혼을 소설에 수놓지 않았는가 싶다.

<자료 참고>
- http://blog.daum.net/jinranpoems/13560022
- http://blog.naver.com/visionist/600050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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