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le.jpg
지난 달 중순 세계적인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amazon.com)이 ‘킨들(Kindle)’을 출시했다.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 시장에 공식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디지털과 종이의 만남을 상세히 다루면서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전자책이란 인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디지털형태로 가공된 콘텐츠를 볼 수있는 단말기다. 전용 단말기가 될 수도 있고, 기존 PDA나 휴대용 PC가 전자책 단말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전자책은 단말기 속의 소프트웨어에 따라 구동 방식이 정해지기 때문에 정형화된 디자인은 없다. 소프트웨어를 내장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장치는 모두 전자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아마존이 종이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한 디지털 재료는 'e잉크(전자잉크)'다. 이미 전 세계 전자책 단말기 벤처 기업들은 e잉크를 소재로 한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종이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유망 전자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태다.

how_eink_works_highres.jpg
◆종이만큼 선명하게…전력소비는 더 낮게

아마존이 채택한 'e잉크'란 어떤 것일까. e잉크는 넓은 의미로는 전자적 디스플레이를 보완할 수 있는 소재를 총칭한다. 그러나 좁게는 e잉크(http://www.eink.com)사가 선보이고 있는 전자잉크 소재를 뜻한다. 전자 잉크를 개발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몇 군데 있지만 실용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은 e잉크사 기술이다.

e잉크는 필름 위에 처리되어 전자 디스플레이에 이용되는 특수 소재다. 화학, 물리, 전자 기술의 결합체다. 핵심성분은 수백만 개의 작은 미립자(직경 약 0.1mm)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마이크로 캡슐 속에는 양극(+) 성질을 가진 백색 분말과 음극(-) 성질을 가진 흑색 분말들이 액체와 함께 채워져 있다. 여기에 음극 전기를 흘리면 양극인 백색 분말이 마이크로캡슐 위쪽으로 올라와 화면을 채운다. 이 과정에서 음극인 흑색 분말은 바닥으로 내려와 눈 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종이의 '백색'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이와 반대로 양극 전기를 흘리면 백색 분말이 아래로 숨고 흑색 분말이 화면 앞으로 떠오르면서 '흑색'을 표시한다. 이렇게 전기적 자극을 번갈아 주면서 종이의 '글자'와 '여백'을 표시하게 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잉크와 그 특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e잉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재의 특성상 유리, 플라스틱, 섬유는 물론이고 심지어 종이 위에도 뿌릴 수 있다. 이론적으로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는 어떤 환경이라도 e잉크를 사용할 수 있다. 필름 소재에 따라 휘어지거나 접히는 디지털 화면도 손쉽게 구현 가능하다.

kits_four_sizes_050907.jpg
전자책 기업들이 e잉크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초저전력’ 구조이기 때문이다. LCD 등과 같이 자체 발광 장치(백라이트)를 내장하지 않기 때문에 전력 소비량이 매우 적다. 백라이트로 뒤에서 불빛을 비춰 화면을 표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 화면을 넘길 때마다 비연속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전원 공급이 필요한 LCD와는 전략 소비 효율이 높다. 업계에서는 e잉크의 소비 전력이 기존 LCD의 5%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 전력량을 낮추면 단말기 휴대 기간이 늘어나고 경량화에 힘이 실린다.

또한 기존 디스플레이장치보다 '종이'에 더 가까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눈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e잉크는 LCD와 달리 스스로 발광하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야간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LCD의 경우 백라이트로 인해 장시간 사용시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e잉크는 태양광 아래에서도 선명한 화면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야외에서도 난반사가 없어 화면을 편안히 응시할 수 있다. 또한 e잉크는 어떤 각도에서든 화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시야각 제한이 거의 없다. 종이와 같은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흑과 백을 선명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종이와 같은 성질에 더 근접해 있다.

날씨 표시 위젯
렉사 e잉크 채택 USB 메모리
e잉크 채택 모토폰
세이코의 e잉크 시계
e잉크 디스플레이 샘플
◆시계에서 휴대폰까지…e잉크 진화는 계속된다

e잉크의 초기 기술은 종이를 대체하기에는 다소 무리였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상당히 느리고 덜 선명했다. 그러나 최근에 출시되는 전자책 단말기에는 구형 e잉크에 비해 반응 속도(25% 향상) 및 화면 밝기(1.8배 향상)가 크게 개선된 ‘비즈플렉스 필름(Vizplex Imaging Film)’을 채택하고 있다. e잉크에 쏠리고 있는 높은 기대치를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실제로 조선일보가 국내 업체의 상용제품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사용자들이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볼 때 거의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수준으로 크게 향상됐다. 특히 화면에 다음 페이지를 가져오기까지 약간의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고스팅’ 효과가 상당히 개선됐다.

e잉크 기반 전자책을 출시한 국내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연속해서 넘길 경우 한번 충전에 7500페이지를 볼 수 있고, 대기 시간은 6~7일에 달한다"며 "전력 소모가 적기 때문에 배터리 크기도 줄일 수 있고, LCD 백라이트 등 추가 부품이 필요 없어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오프라인 서점들이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북(U-book)'의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e잉크 기술의 도움이 필수적이게 된 셈이다.

그러나 e잉크는 우수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보급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e잉크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자책' 단말기로서 본질적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손쉽게 디지털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고,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결합도 가능하다. 그러나 종이책처럼 직접 책장을 넘기며 읽는 만족도는 낮다. 또한 소장하는 기쁨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미려한 장정이나 디자인을 구현할 수도 없어 전반적으로 디지털의 건조한 느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전자책 콘텐츠에 적용될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기술도 표류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불편을 감수해야 할 사용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구입한 소비자들보다는 불법 복제물을 사용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많은 탓이다.

그러나 전자책이 아닌 분야에서는 e잉크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초저전력 설계가 필요한 휴대형 기기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PC 액세서리, 시계, 공공 게시물, 프로모션 광고물 등 소비재 및 산업재의 성능을 높이는데 이상적이다.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사 모토로라는 지난 해 말 인도에서 LCD 화면 대신 e잉크를 채택한 휴대전화 ‘모토폰(MOTOFONE)’을 내놨다. e잉크 눈금이 장착돼 메모리 용량을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렉사 USB메모리 등도 호평을 받았다. 일본 세이코는 e잉크 화면을 채택한 패션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e잉크로 만든 POP 광고는 종이처럼 얇으면서도 전력 소모량이 매우 낮고, 선명한 동적(애니메이션) 효과를 줄 수 있어 새로운 광고 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미국의 e잉크사와 공식 제휴하여 ‘잉크인모션(Ink-In-Motion)’이란 POP 광고판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국내 한 벤처업체 제품도 북미 시장 등서 인기다.

비즈플렉스 e잉크 필픔.
LG필립스 e잉크
◆LCD 전자책 아픔을 딛고…국내도 e잉크 기지개

우리나라의 전자책 단말기는 한때 크게 좌절했던 시절이 있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전자책 소프트웨어'를 제시하자 전자책 붐이 일었다. 빌게이츠의 말 한마디에 일부 국내 벤처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LCD 기반의 전용 단말기를 잇달아 내놓고, 전자책 콘텐츠를 유통 채널을 구축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단 전자책으로 읽을 만한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그 나마 있던 전자책 콘텐츠는 불법복제에 몸살을 앓았다. LCD 화면을 채택해 전자책이 거추장스러웠고, 눈이 쉽게 피로해져 책을 대체하기는 커녕 시장에서 소리소문 없이 밀려났다. 국내 전자책 유통업체 관계자는 “당시는 전자책에 거품이 일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살아남은 전자책 관련 업체들은 호환성을 확보하고 단말기 성능 개선에 매달렸다. 구입한 전자책 정품은 PC용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PDA, 휴대폰 등에서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문서 규격도 대체로 차세대 디지털 문서 표준인 'XML'로 맞춰가고 있다.

올해는 전자책 단말기 시장의 실질적인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업체들은 올 하반기부터 e잉크를 채택한 단말기를 시장에 내 놓았거나,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 폭발적인 수요를 예상하긴 어려워 자체 생산하기 보다는 대만 OEM 모델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출시된 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소니 리더' 전자책 단말기도 최근 해외에서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비공식적인 유통이 활발하다. 최근에 아마존 '킨들'의 등장으로 국내에서도 e잉크 단말기 출시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은 내년 업계 전망을 밝게 한다.

인터넷뉴스부 서명덕 기자 / 2007년 12월 22일(토) 위클리 비즈에 개제된 전면 기사를 노컷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국내 한 업체의 e잉크 전자책 샘플
[관련 글-사진-동영상 참고]

07/12/20 아마존 '킨들' 국내 최초(?) 5분 프리뷰입니다
http://itviewpoint.com/45712

07/12/03 아마존 전자책 단말기 'Kindle'의 속을 뜯어보니
http://itviewpoint.com/44454

07/06/28 'e잉크'로 연 전자종이 시대, 실제 성능은?
http://itviewpoint.com/35071

07/05/13 A4 크기 '컬러' 플렉시블 전자종이 개발
http://itviewpoint.com/32190

06/10/25 두루말이형 e북 리더 '레디우스' 실물
http://itviewpoint.com/19102

06/01/10 [CES]2006년엔 전자종이 'e잉크'가 뜬다
http://itviewpoint.com/8542
Share
이 글과 가장 관련이 있는 글을 자동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profile

안녕하세요. ITViewpoint 스타터이자 공동 에디터 '서명덕 기자' 입니다. 닉네임은 떡이떡이 입니다.

 

이 곳은 블로그미디어이며, 개인 공간은 http://itviewpoint.thoth.kr/ 을 메인으로 옮겨 갈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목적이라면 콘텐츠 막펌을 전면 허용 http://itviewpoint.com/blog/54971 합니다. 다만 비상업적인 용도에 한하며, 상업적인 용도라면 별도로 문의하세요. RSS http://itviewpoint.com/blog/rss 는 전문 제공합니다.